헬스케어 게임 체인저 노리는 구글

업계 내 경쟁 관계에만 머무르는 업체들은 결국 더 강한 포식자들에게 잡아 먹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헬스케어 산업 전반적인 이해와 타 산업과의 상생 모델 개발이 필수가 될 것이며, 그에 대한 준비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존재 유무도 결정될 것이다.



[ 기사 원문 ]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IT 대기업 구글. 구글의 사명은 세상의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화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을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구글은 ‘구글 맵스’를 통해 전 세계 지리정보를 모으고 ‘구글 북스’를 통해 책 내용을 모으고 있다. 

사람들의 영원한 관심거리인 건강 관련 정보도 구글의 미션을 벗어나지 못한다. 구글은 2008년 개인들이 자신에 대한 건강정보 및 의무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개인의무기록(PHR) 플랫폼인 ‘구글 헬스’를 야심차게 시작했다.


구글의 검색엔진, 지메일 등을 사용하는 넓은 가입자 기반과 검색광고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 그리고 의사나 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 놓겠다는 강력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구글 헬스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2011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구글 헬스가 실패한 원인으로는 의료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꼽힌다. 또 개인이 자신의 의무기록을 끌어오는 것이 쉽지 않고, 의료정보에 대한 법적 규제가 까다롭다는 점 등도 한 몫 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구글 헬스에 의무기록을 올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개인의 이득이 불확실해 의무기록을 올리는 데 따른 번거로움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글글래스로 헬스케어와 다시 조우
이후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와 구글 플레이를 통해 모바일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구글은 예기치 못하게 다시 한번 헬스케어 사업과 조우하게 된다. 스마트폰 다음의 웨어러블 컴퓨터로 야심차게 내놓은 구글글래스가 의료계에서 각광 받게 된 것이다. 

구글은 초기에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구글글래스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신기술에 흥미를 느낀 몇몇 의사가 참여했다. 이들이 다양한 의료현장에서 구글글래스를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여러 업체들이 구글글래스용 의료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러 업체가 병원과 협력해 다양한 상황에 구글글래스를 테스트했다. 의사가 시술을 하면서도 실시간으로 환자의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 생체 징후나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영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시술에 대한 집중을 잃지 않으면서 환자에게 발생하는 문제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응급 현장에 출동한 응급구조사가 구글글래스를 통해 환자 정보를 전송해 응급의학 전문의로부터 적절한 처치를 지시받기도 했다.


여러 의사들과 앱 제작 회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구글글래스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동안 구글글래스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나왔다. 세련되지 않은 디자인, 카메라 사용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 하드웨어 성능과 관련한 프로세서의 낮은 성능, 짧은 배터리 수명 등이 지적됐다.

급기야 지난 1월, 구글은 구글글래스 판매를 중단하면서 실험단계를 넘어선 본격적인 제품으로 거듭나기 위한 단계를 거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료 현장에서의 구글글래스 사용은 스마트폰처럼 일반인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제품이 되기 전에는 널리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우선, 환자 안전 혹은 의사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병원의 이익을 올려줄 가능성이 크지 않은 구글글래스를 병원이 구매해 의료진에게 나눠줄 가능성은 낮다. 의사가 자비로 구매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본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PDA폰이 출시됐을 때 이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었지만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일부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자비로 사서 쓴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의사들이 최신 기술 도입에 익숙할 것 같지만 의료기기에 대해서만 그럴 뿐 스마트 장비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별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개원 당시인 2003년 직원들에게 PDA폰을 지급하고 병원 전자의무기록(EMR)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는데, 예상보다 적은 의료진이 이를 사용했다.
PDA폰이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는 일반인이 쉽게 사용할 만한 장비가 아니면 의사들도 잘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스마트폰처럼 일반 대중이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돼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글글래스와 같은 스마트 글래스를 사게 되는 상황이 돼야 이를 병원에 가져와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구글글래스가 의료계의 관심을 끄는 사이에 구글은 다시 한 번 헬스케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의료비 규모를 보면서한 번의 실패만으로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바일 세계의 최대 경쟁자인 애플이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에서 경쟁의식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구글은 애플에 이어 헬스케어 플랫폼 ‘구글핏’을 발표했다.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의료서비스 플랫폼이라기보다는 피트니스에 중점을 둔 것이다. 

피트니스에 중점 둔 구글핏
파트너 회사로는 체중 감량 앱 ‘눔’과 야외 활동 앱 ‘런키퍼’와 같은 건강관리 서비스와 아디다스, 나이키와 같은 스포츠용품 회사, 그리고 여러 IT 회사가 포함됐다. 애플 ‘헬스킷’과는 달리 EMR 회사와 병원이 빠져 있어 피트니스에 초점을 맞췄음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본격적인 의료가 아닌 피트니스에 집중하는 것이 과거 구글 헬스의 실패 때문이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한 매체는 구글핏 발표 도중 구글 관계자들이 단 한 번도 ‘헬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플랫폼으로서 구글핏의 가장 큰 특징은 판을 까는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구글핏은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적용해 만든 기기와 앱들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업체들의 자율성이 높다. 이는 애플의 헬스킷 플랫폼과 대조되는 부분인데, 헬스킷은 업체들의 정보를 한 곳으로 모으고 이를 애플이 만든 헬스케어 앱을 통해 제공하려 한다. 

애플은 일반인들이 플랫폼에 쌓이는 건강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므로 정보를 가공해 소비자가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제공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업체 모두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구글핏은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 애플은 소비자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구글이 피트니스에 초점을 맞춘 것은 현재의 의학·기술 수준에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학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아직 질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질병이 생기기 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약속하는 것처럼 건강할 때 몸에 무엇인가를 차고 다니다가 질병이 생기기 전에 그 사실을 알게 돼 미리 대처한다는 것은 아직은 요원한 일인 것이다. 현재 나와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나 서비스들의 비즈니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 또한 구글이 당분간 피트니스에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 질병 없는 사람 몸 변화 연구 나서
구글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지난 해 여름부터 아직 질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몸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연구하는 ‘베이스라인 스터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연구에서는 175명의 참가자에 대해 유전자 정보뿐만 아니라 소변, 혈액, 타액, 눈물 등 다양한 체액 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음식과 약물을 어떻게 대사하는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심박수는 어떻게 변하는지, 화학 반응이 유전자 활동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까지 보겠다고 한다. 

175명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는 파일럿이며, 궁극적으로는 수천 명이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하니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구글은 베이스라인 스터디를 통해 심장병이나 암을 훨씬 조기에 발견해 치료 중심 의학이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마련하고자 
한다. 기존에 발견된 바이오마커(biomarker·원래 체내에 있거나 질환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물질로, 이들 물질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정상 혹은이상 여부를 알게 된다)는 환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질환이 진행된 다음에야 이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의학에서는 기존의 바이오마커를 건강한 사람에게 이용해 질환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베이스라인 스터디는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바이오마커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정하에 이를 찾아 나서겠다는 것이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바탕으로 피트니스에 초점을 맞춘 헬스케어 플랫폼인 구글핏을 내놓고 동시에 의학지식 축적을 위한 베이스라인 프로젝트를 가동함으로써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업체와 사용자가 모일수록 시너지가 발생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는 급속도로 구글핏과 애플의 헬스킷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도 헬스케어 플랫폼을 내놓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업체들이 구글과 애플 중 한 곳 혹은 양쪽에만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베이스라인 스터디를 통해 얻게 되는 의학지식은 예방의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에 없었던 의학지식이 쌓이기 시작하면 의료 영역에 큰 변화가 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작게는 더 많은 암환자가 조기에 진단을 받아 완치가 힘든 진행성 암환자가 줄어드는 변화에서부터 크게는 간편하게 질병을 조기에 진단받을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 굳이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는 변화까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이 베이스라인 스터디 결과를 바탕으로 의학지식 플랫폼을 구축하게 되면 의료기기 제조업체이나 질병 관리 앱 제조회사에서부터 대형병원, 심지어 보험회사에 이르기까지 헬스케어 업계의 주요 참가자들이 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구글은 검색광고와 모바일 OS를 장악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헬스케어 산업에서 기존 이해관계자들을 제치고 업계를 이끌어 가기 위한 포석을 깔고있다. 업계 내에서의 경쟁에만 매몰돼 있는 업체들은 어느 날 구글에 종속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테크M 제26호(2015년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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